수노를 써도 결국 다시 사람의 손으로 돌아오게 되는 이유
나는 작곡 프로그램을 켤 때마다 늘 한 가지 다짐을 한다.
“이번엔 AI에 의존하지 말자.”
하지만 막상 작업이 막히면 손이 먼저 수노(Suno)를 찾는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리듬이든 코드든, 몇 번만 클릭하면 어느 정도의 완성도는 금세 만들어주니까.
며칠 전 한 스튜디오에서 트랙메이커 몇 명이 모여 이런 얘기를 나눴다.
주제는 단순했다.
“수노로 진짜 괜찮은 트랙을 만들 수 있을까?”
그 대화가 길어졌고, 결론은 명확했다.
“아이디어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걸로는 절대 끝낼 수 없다.”
수노가 주는 건 완성된 음악이 아니라 방향성이다
나는 수노를 트랙 초안 단계에서 종종 쓴다.
작업이 한참 무뎌졌을 때, 내 손의 리듬이 너무 익숙하게 반복될 때,
그럴 때 수노에 프롬프트를 넣는다.
예를 들어 이렇게 쓴다.
‘강한 신스 베이스, 무식하게 때려박는 드럼, R&B 멜로디 감성’.
AI는 그걸 바탕으로 나름 그럴듯한 트랙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그럴듯함’이다.
처음 들으면 꽤 괜찮은데, 막상 세션을 뜯어보면 쓸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베이스는 공기감이 없고, 드럼은 밀도가 약하다.
가끔은 음역대가 엉망이라 믹스에서 바로 무너진다.
그래서 우리는 AI가 뽑아준 사운드를 그대로 쓰지 않는다.
그건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참고용 밑그림’에 가깝다.
다만 그 밑그림 속에서 전혀 예상 못 한 리듬이나 멜로디의 흐름을 건질 때가 있다.
그게 진짜 수노의 가치다.
‘내가 더 잘 찍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가
트랙메이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운드의 주권’이다.
수노에서 뽑은 소스가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보다 더 나은 질감으로 다시 찍을 수 있다면
그 순간 AI의 소스는 버려진다.
내가 그렇게 한다.
베이스가 마음에 안 들면 트릴리안(Trilian)으로 새로 잡고,
신스 톤이 차갑게 느껴지면 세럼(Serum) 대신 아날로그 플러그인을 쓴다.
드럼이 플랫하게 들리면 손으로 찍어 다시 밀어 넣는다.
결국 모든 건 내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다.
이건 윤리나 저작권의 문제가 아니다.
순수하게 ‘소리의 질감’ 문제다.
AI가 만든 소리를 그대로 쓰면 트랙의 생기가 사라진다.
결이 단정하긴 하지만, 살아 있는 뉘앙스가 없다.
한마디로, 인간의 ‘미묘한 실수’가 빠져 있다.
AI에게 가사를 던지면, 음악이 달라진다
흥미로운 건 수노가 가사에 꽤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가사가 특이하면, 트랙 자체도 그 분위기를 닮아간다.
‘카메라’라는 단어를 던지면 스플래시 사운드가 생기고,
‘달빛’ 같은 단어를 넣으면 리버브가 부드럽게 퍼진다.
그래서 요즘은 트랙메이커도 가사를 조금씩 쓴다.
AI가 만들어주는 탑라인(멜로디)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단어 하나가 사운드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시대가 온 셈이다.
하지만 이 역시 ‘보조 장치’일 뿐이다.
결국 그 라인을 녹음하고 다듬는 건 사람이다.
진짜 작업은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AI가 만들어준 트랙을 스템으로 뽑아 들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아, 이건 못 쓰겠네.”
소리가 얇거나, 질감이 들쭉날쭉하거나, 공간이 너무 좁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다시 녹음하고,
리버브를 새로 걸고, 스테레오 이미지를 벌리고,
때로는 같은 프롬프트로 수노를 다시 돌린다.
더 괜찮은 톤이 나올 때까지.
결국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남는 건 처음 AI가 뽑아준 소스가 아니라,
그걸 토대로 새로 만든 내 트랙뿐이다.
AI는 사라지고, 인간의 흔적만 남는다.
결국 수노는 ‘보조 장비’일 뿐이다
수노는 아이디어를 주는 훌륭한 도구다.
하지만 도구는 언제나 ‘손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
트랙메이커에게 중요한 건 AI가 만들어주는 결과가 아니라,
그걸 보고 새로운 걸 떠올리는 능력이다.
AI로 다 해결된다고 믿는 순간,
트랙메이커는 단순한 ‘버튼 조작자’로 남는다.
하지만 여전히 미디를 직접 찍고,
리듬을 밀고 당기며, 소리의 온도를 조절하는 사람만이
진짜 ‘사운드 메이커’로 불릴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수노를 켠다.
그러나 그건 내 대신 트랙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놓친 아이디어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다.
결국 마지막 손질은, 언제나 사람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 이 글은 개인적인 음악 작업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콘텐츠이며, 특정 제품이나 기술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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