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다시 불러낸 하드디스크, 왜 데이터센터는 SSD 대신 HDD를 고집할까
시작하며
2025년 들어 하드디스크(HDD)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SD가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보였던 이 느린 저장 장치가, AI 시대에 들어서며 오히려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개인용 PC에서는 사라졌지만, 데이터센터에서는 여전히 핵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1. 하드디스크는 정말 사라진 기술일까
한때 하드디스크는 컴퓨터의 기본 저장장치였다. 회전하는 자기 원판 위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물리적 구조 때문에 속도나 소음, 발열 문제는 있었지만, 가격 대비 용량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SSD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반도체 칩에 데이터를 전자적으로 저장하는 SSD는 빠르고 조용하며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트북과 데스크톱은 하드디스크를 없애고 SSD만 탑재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하지만 2024년을 지나며 시장 흐름은 다시 변했다. AI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그 ‘느리고 오래된 기술’이 다시 불려나온 것이다.
2. AI가 다시 하드디스크를 찾게 된 이유
나 역시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왜 하필 HDD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데이터의 양 때문이다.
AI는 수많은 텍스트, 이미지, 코드, 음성을 매초마다 생성한다. 이렇게 쌓이는 데이터는 일종의 자산이다. 기업들은 과거 데이터를 삭제하지 않고 계속 보관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학습 데이터가 모델 성능 개선의 핵심 자원이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를 감당하려면 비용 대비 효율이 중요해진다. 시게이트(Seagate)의 자료에 따르면, 동일 용량 기준으로 HDD는 SSD보다 5~8배 저렴하다. 전력과 냉각, 공간비용까지 합하면 총 보관 비용에서 SSD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결국 데이터센터 입장에서는 속도보다 저장 효율이 더 중요해진 셈이다.
3. 데이터센터의 현실, ‘핫데이터 vs 콜드데이터’
실제 데이터센터 내부에서는 데이터의 성격에 따라 저장 장치가 구분된다.
📑 어떤 데이터가 어떤 장치에 저장될까
| 구분 | 설명 | 저장장치 |
|---|---|---|
| 핫데이터 (Hot Data) | 자주 접근하고 빠른 연산이 필요한 데이터 | SSD |
| 콜드데이터 (Cold Data) | 자주 쓰이지 않지만 반드시 보관해야 하는 데이터 | HDD |
즉,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검색, 스트리밍 등)는 SSD로 처리되지만, 그 뒤에 남는 수억 건의 로그, 이미지 백업, 모델 학습용 원본 데이터는 전부 HDD에 저장된다.
결론적으로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는 여전히 하드디스크 위에 세워져 있다.
4. HDD 생산비 차이, AI 시대의 ‘경제 논리’
데이터센터는 단순히 저장장치를 많이 사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전력과 냉각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산업이다.
시게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1제타바이트(ZB) 용량의 저장공간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설비 비용은
- SSD(낸드플래시): 약 570억달러(약 81조원)
- HDD: 약 11억달러(약 1조5,000억원)
무려 50배 차이가 난다. 이 정도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SSD로 대체하기엔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재 데이터센터 저장장치의 약 80~90%가 하드디스크다. 앞으로도 IDC(시장조사업체)는 SSD: 20%, HDD: 80% 비율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5. 실제 시장 변화, ‘하드디스크 품귀 현상’
이제 시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웨스턴디지털(WD), 시게이트(Seagate) 같은 HDD 제조사의 매출이 최근 30% 이상 급증했고, 글로벌 하드디스크 시장은 2030년 약 91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수요 폭증에 비해 공급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HDD 수요가 줄자 생산 라인을 축소했는데, AI 특수가 갑자기 몰려오면서 ‘공급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핵심 부품인 글래스 플래터(Glass Platter)를 일본의 ‘호야(HOYA)’가 독점 생산하고 있어 공급 병목 현상이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거기에 테스트 과정만 수백 시간이 걸리다 보니 생산 속도 자체가 느리다.
결국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6. 기술 발전은 멈추지 않는다, HDD의 진화 방향
현재 시판 중인 최고 용량 하드디스크는 30TB 수준이며, 가격은 약 120만원이다. 앞으로는 HAMR(열보조 자기기록) 기술을 통해 디스크 표면을 순간 가열해 데이터 밀도를 극단적으로 높이는 방식이 도입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100TB급 하드디스크도 가능하다고 본다. 즉, HDD는 여전히 진화 중이며, SSD가 단가 면에서 이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의미다.
7. 개인 입장에서 본 HDD의 의미
나 역시 노트북을 새로 살 때 SSD만 장착된 모델을 선택했다. 그러나 영상 백업이나 프로젝트 데이터처럼 오래 보관할 자료는 여전히 외장 하드디스크에 저장한다.
SSD는 빠르지만, 비용 대비 용량에서 HDD를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클라우드나 개인 NAS를 구축할 때도 여전히 HDD가 주력이다. AI 시대에 데이터는 ‘석유’와 같다. 그 석유를 저장할 ‘탱크’ 역할을 하는 게 바로 하드디스크다.
8. 앞으로의 전망, SSD와 HDD의 공존
IDC, 가트너 등 주요 시장 분석기관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AI 데이터센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겠지만, 저장장치 구조는 SSD와 HDD의 공존 체제가 당분간 유지된다고 본다.
- 빠른 연산과 캐싱은 SSD
- 장기 보관과 백업은 HDD
이 구도가 당분간 깨질 가능성은 낮다. SSD 가격이 계속 내려가더라도, HDD의 경제성은 여전히 강력하다.
마치며
AI의 성장 속도가 빠를수록 데이터는 더 많이 쌓인다. 그 데이터를 가장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장치는 결국 하드디스크였다. ‘느리지만 든든한 기술’이 다시 부활한 이유는 단순했다. 속도보다 경제성과 안정성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환경에 맞춰 역할을 바꿔 살아남는다. 하드디스크의 부활은 그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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