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는 왜 TSMC와 삼성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을까
시작하며
반도체 칩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설계도를 그리고 파운드리에 맡기면 끝나는 게 아니다. PDK, EDA, IP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반도체 생태계를 이끄는 핵심이다.
1. 반도체 설계와 생산, 왜 이렇게 복잡할까?
칩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기업들이 얽히고설켜 협업해야 한다. 이 과정을 알면, 왜 TSMC 설계도가 삼성 파운드리로 바로 갈 수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 반도체 산업의 기본 구조, 간단하게 요약하면
역할 | 주요 기업 | 핵심 기능 |
---|---|---|
팹리스(Fabless) | 엔비디아, 애플, 퀄컴 | 반도체 설계만 담당 |
파운드리(Foundry) | TSMC, 삼성, 인텔 | 설계된 칩을 실제로 제조 |
EDA 툴 업체 | 케이던스, 시놉시스, 지멘스 | 칩 설계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 |
IP 제공 기업 | ARM, 시놉시스 등 | 표준화된 설계 블록 제공 |
패키징 및 후공정 | ASE, 앰코 등 | 제조된 칩을 제품화 |
내가 처음 이 산업 구조를 공부했을 때 놀랐던 건, '설계'와 '생산'이 완전히 다른 생태계를 가진 별개의 산업이라는 점이었다. ‘파운드리에 맡기면 끝’이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2. 왜 같은 설계도로 TSMC와 삼성에서 똑같이 만들 수 없을까?
겉보기엔 같은 3나노 공정이라도,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그 이유는 PDK와 EDA의 차이 때문이다.
(1) PDK가 다르다
PDK는 일종의 ‘건축 법규’다. 반도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구조, 간격, 전류 흐름 기준 등이 다 들어 있다. 설계는 이 기준을 철저히 따라야 하므로, 파운드리를 바꾸면 PDK가 달라지고, 결국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2) EDA 툴 환경이 다르다
TSMC나 삼성은 자사 공정에 최적화된 툴 조합(레퍼런스 플로우)을 추천한다. 자동차에 맞는 타이어와 엔진오일이 따로 있는 것처럼, 칩 설계도도 각 파운드리 환경에 맞춰 최적화돼야 한다.
(3) IP 생태계가 다르다
특정 파운드리에서 검증된 IP는 다른 파운드리에서는 사용할 수 없거나, 성능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 IP까지도 파운드리와 맞물려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이식이 쉽지 않다.
3. PDK, 도대체 뭐길래?
PDK(Process Design Kit)는 파운드리마다 제공하는 설계 가이드라인이다. 건축으로 치면 ‘도시계획법’처럼, 칩 설계에서 어겨서는 안 될 규칙들로 가득하다.
📑 PDK 안에는 어떤 정보들이 담겨 있을까?
구성 요소 | 설명 | 예시 |
---|---|---|
DRC (Design Rule Check) | 선폭, 간격 등 물리적 설계 기준 | 건물 간 이격 거리 같은 규칙 |
LVS (Layout vs Schematic) | 회로도와 실제 배치 비교 검증 | 설계와 시공 도면 비교 |
PEX (Parasitic Extraction) | 신호 간섭, 전류 손실 계산 | 미세한 방해 요소 분석 |
전력망 규칙 | 전원 안정성 기준 | 전압 강하, 정전 방지 설계 |
DFM (Design for Manufacturing) | 양산 최적화 정보 | 수율을 높이기 위한 설계 조정 |
개인적으로 PDK를 처음 봤을 때, '이걸 안 보면 그냥 설계자가 만드는 거 아냐?'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공정마다 다르고, 파운드리 기술의 핵심 비밀이라 엄청나게 정밀하다.
4. EDA 툴, 설계자에게는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는 설계자가 직접 회로를 손으로 그리지 않고, 툴로 모든 걸 자동화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툴이 바뀌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 EDA 툴이 실제로 하는 일은?
- RTL 코드 → 논리 합성 → 물리 구현
- 자동 배치 및 배선
- 타이밍, 전력, 영역(PPA) 최적화
- 검증 자동화 (DRC, LVS, PEX 등)
- 테이프 아웃 파일(GDSII or OASIS) 생성
EDA 툴은 단순히 설계 도우미가 아니라, 반도체의 'DNA 조립기계'처럼 작동한다. 실제로 설계자들은 이 툴 없이는 칩 설계를 시작할 수 없다.
5. 설계를 쉽게 만들어주는 'IP'란?
IP(Intellectual Property)는 검증된 설계 블록이다. CPU, 메모리 컨트롤러, USB 인터페이스 등 기능 단위를 직접 만들지 않고, 라이선스로 구입해 바로 끼워넣는다.
🧩 이런 IP가 있으면 어떤 게 편해질까?
- 설계 시간 단축
- 검증된 블록 사용 → 실패 확률 감소
- 성능 최적화
- 라이선스로 수익 창출 가능 (ARM 등)
내가 IP 구조를 처음 봤을 땐, '이게 마치 레고처럼 조립하는 거구나' 싶었다. 직접 다 만들 필요 없이, 성능이 보장된 블록을 사서 조립하니 효율이 엄청나게 좋아진다.
6. 파운드리는 단순한 제조사가 아니다
결국 파운드리가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생산 라인이 아니다. 설계부터 양산까지 이어지는 생태계 전체다.
🏗️ 설계-제조 협력 생태계, 왜 중요한가?
- PDK: 설계의 기준이 되는 데이터셋
- EDA: 설계를 자동화하고 제조에 맞게 조정
- IP: 미리 검증된 기능을 쉽게 활용
- 레퍼런스 플로우: 검증된 툴·설계 조합 제공
- Tape-out: 완성된 설계를 제조로 넘기는 절차
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맞물려야만 하나의 칩이 탄생한다. 그래서 TSMC, 삼성, 인텔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마치며
반도체 산업은 단순한 설계와 생산을 넘어서, 수많은 협력과 표준화, 검증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파운드리와 팹리스는 경쟁이 아니라 협업의 관계이며, PDK, EDA, IP가 그 협업의 다리 역할을 한다. 이 구조를 이해해야만 반도체 산업의 진짜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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